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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 KBO 최저 승률의 진실, 감사용과 장명부

민트트립 2025. 5. 25. 00:25

꼴찌도 이런 꼴찌는 없었다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 KBO 최저 승률의 진실

 

KBO 리그 역사상 단일 시즌 최저 승률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은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가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는 대기록으로 남아 있죠.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 처참했던 그들의 기록들

한국 프로야구가 처음 출범했던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는 총 80경기를 치러 15승 65패라는 성적을 기록하며 승률 0.188에 그쳤습니다. 당시 6개 팀 중 최하위는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특히, 그해 후기 리그에서는 40경기에서 단 5승만을 거두며 승률 0.125라는 더욱 처참한 수치를 보였습니다. 이 기록은 현재까지도 KBO 리그 역대 기별(전기/후기) 최저 승률로 남아 있습니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부진은 단순한 패배를 넘어 팀 전체의 문제였습니다. 팀의 WAR(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은 음수를 기록했는데, 이는 팀 전체의 전력이 평균 이하임을 뜻하는 지표입니다. 15승은 KBO 리그 역대 단일 시즌 최소 승리 기록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특정 팀에게도 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당시 강팀이었던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와의 시즌 맞대결에서는 16전 전패를 당하며, 특정 팀 상대 단일 시즌 전패라는 불명예를 안았습니다. 또한, 원정 경기에서는 무려 21연패를 기록하며 역대 최다 원정 연패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공격 지표도 처참했습니다. 타석, 안타, 루타, 타점, 득점 등 주요 공격 지표에서 KBO 역대 단일 시즌 최소 기록들을 갈아치웠습니다. 예를 들어, 총 득점은 302점으로 다른 구단들의 평균 득점(395점)에 한참 못 미쳤죠. 투수진 역시 평균자책점 7.06으로 리그 평균보다 훨씬 높아 전반적으로 매우 부실했습니다. 감사용 투수가 '슈퍼스타 감사용'이라는 영화로 회자될 정도로 팀의 패배를 상징하는 선수가 되었던 것도 팀의 투수력이 전반적으로 매우 약했기 때문입니다.

시대의 아픔과 함께 남은 기록

1982년은 한국 프로야구가 처음 시작된 해였습니다. 각 팀은 촉박한 준비 기간과 선수 수급의 어려움 속에서 리그를 꾸려나가야 했습니다. 삼미 슈퍼스타즈 역시 국가대표급 선수층이 두텁지 않았고, 전반적인 전력 구성에서 다른 팀들에 비해 열세를 보였습니다. 박현식 감독이 시즌 도중 성적 부진으로 경질될 만큼 팀의 분위기도 좋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탄생한 삼미 슈퍼스타즈의 1할대 승률은 KBO 리그 역사상 약체 팀의 상징이자, 프로야구 초창기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삼미 슈퍼스타즈를 떠올리면,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았던 두 투수, 감사용과 장명부가 자연스레 생각납니다. 한 명은 영화로도 제작되며 '패전 처리 투수'의 애환을 상징했고, 다른 한 명은 전무후무한 30승을 달성하며 '괴물 투수'의 전설을 남겼죠.

감사용: '슈퍼스타 감사용'의 주인공, 끈기의 상징

감사용 선수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창단 멤버이자 좌완 투수였습니다. 그의 이름 앞에는 늘 "슈퍼스타 감사용"이라는 영화 제목이 따라붙을 정도로, 그의 야구 인생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죠.

 

· '패전 처리 투수'의 대명사: 영화는 감사용 선수를 주로 '패전 처리 투수'로 묘사하며, 팀이 크게 지고 있을 때 마운드에 올라 묵묵히 경기를 마무리했던 그의 애환을 그렸습니다. 실제로 그의 승패 기록은 좋지 않았지만, 주어진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며 팀을 지켰던 끈기의 아이콘으로 기억됩니다.

·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 2004년 개봉한 이 영화는 감사용 선수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승리보다 패배가 익숙했던 투수였지만, 꿈을 향한 열정과 포기하지 않는 정신으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죠. 그의 작은 체구(169cm)에도 불구하고 마운드에서 고군분투했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보통 사람의 위대한 도전'이라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 좌완 투수의 희소성: 1982년 프로야구 원년, 삼미는 좌완 투수가 부족했고, 감사용 선수는 그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입단했습니다. 그만큼 팀에서 그의 역할이 중요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장명부: KBO 유일무이 '30승 투수', 영웅과 비운의 교차점

장명부 선수는 1983년 삼미 슈퍼스타즈에 입단하며 KBO 리그에 혜성처럼 등장했습니다. 그는 '너구리'라는 별명처럼 타자들을 능글맞게 요리하는 뛰어난 투수였습니다.

 

· KBO 유일 30승 투수: 1983년, 장명부 선수는 44경기 출장, 36완투, 427.1이닝 투구, 30승 16패 6세이브라는, 현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이 30승은 KBO 리그 역사상 단일 시즌 최다승이자 유일한 기록으로, '철완'의 상징처럼 남아있습니다. 이 기록은 당시 최하위였던 삼미를 3위까지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 혹사와 비운의 삶: 그러나 그의 30승은 엄청난 혹사의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다음 시즌부터 급격히 성적이 하락했고, 이후 여러 팀을 전전하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뛰어난 실력과는 별개로 사생활 문제가 끊이지 않았으며, 도박과 마약 등으로 인해 KBO에서 영구 제명되고 결국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며 비운의 투수로 남았습니다.

· '너구리'라는 별명: 마운드 위에서 능글맞게 타자와 수싸움을 벌이고, 때로는 빈볼(고의 사구)을 던져 타자의 기세를 꺾기도 하는 영리한 모습 때문에 '너구리'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감사용과 장명부, 이 두 투수는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팀의 영광과 좌절을 함께하며 KBO 리그 초창기의 잊을 수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한 명은 묵묵한 끈기로, 다른 한 명은 압도적인 실력과 파란만장한 삶으로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